Tuesday, November 21, 2006

락커룸에서 생긴 일...

I.

운동권(?)인 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으러 락커룸에 갔다. 옷을 갈아 입고 나오면서 어떤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을 봤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깜빡 잊고 락커룸 안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꺼내러 다시 갔는데, 그 사람이 열심히 여기 저기 락커룸을 돌아 다니며 이 열쇠 저 열쇠를 돌려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체육관은 들어 올 때 다이얼 열쇠를 빌려 주기 때문에 자기 락커룸이 어디였는지 잊어버리는 수가 간혹 있다. 그 사람도 자기 락커룸을 잊어 버려서 여기 저기 열쇠 다이얼들을 돌리면서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긴 해도 만에 하나 그 사람이 도둑이면 어떻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락커룸을 열고 닫는 걸 봤으니까 그 안에 내 옷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좀 찝찝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그냥 물건을 챙겨서 나오는데, 나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했다. 또 특히 내 지갑 안에 친구에게서 빌린 돈이 몇백불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더더욱 찝찝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직도 그러고 있을까, 혹시 내 락커를 열려고 시도하고 있지는 않을까 한 번 확인해 볼까하는 생각에 다시 돌아 갔다. 그래도 그냥 다시 가는 건 그 사람 보기에 좀 이상하니까 우선 살짝 거울로 그사람이 뭐하는지 봤다.

그 사람은 여전히 여기 저기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내 락커는 아래 단에 있었고 그 사람은 윗단만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될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찝찝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망설이는데 그 사람이 나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데면데면해 져서 다시 내 락커룸으로 돌아 가서 뭔가를 다시 찾는 척을 했다. 약간 티 났을까... -_-;;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다가 왔다. 자기가 락커룸이 어딘지 몰라서 찾고 있는데, 다이얼 키 사용법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잘 못찾겠다고 다이얼 키 사용법 좀 알려 달라고 했다. 역시 내가 괜한 오해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 주기는 했지만, 사실 그 사람은 진짜로 다이얼 키 사용법을 잘 모른다기 보다는 내 생각을 알아 차리고 나를 안심시켜 주려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역시 내가 괜한 사람을 도둑으로 몰은 것이다. 사법제도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자백이나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건 용의자를 범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지만... 어쨌든 나는 크리스찬이라면서 궁지에 빠진 사람을 도둑으로 몬 셈이 되었다. 회개했다. 어떻게 했어야 할까.. 내가 그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도움을 주려고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 그 사람이 락커룸 번호를 잊어 버린 것 같으면 그 사람에게 가서 락커룸 번호를 잊어 버렸냐, 내가 도와 주겠다, 뭐 이렇게 나갔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밖에 나가 담당자에게 누가 락커룸 번호를 잊어 버려 헤메고 있는 것 같으니 도와 달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러면 괜히 멀쩡한 사람을 몰아 세우는 꼴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II.

물론 사실 까 놓고 말하자면 내가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다. 내가 그 사람이었어도 약간 당황하고 창피했을 것이지 뭐 기분 나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멀쩡한 사람을 도둑으로 모는 마음의 죄를 지었다. 솔직히 돌이켜 보건데 나는 이번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의심하며 살아 왔다. 어두운 밤길에 누가 옆을 지나 가면 혹시 강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다반사일뿐더러 주위 사람들의 뜻을 오해하여 함부로 판단하고 마음으로 나쁜 사람이라 몰았던 일도 많았다.

대부분의 이런 일들이 "마음"에서 끝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할 때에 그런 생각이 묻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생각과 말들이 모르는 사이에 점점 부풀려져 악성 루머가 되기도 하고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예수님은 심지어 "눈으로 죄를 짓는 것 보다 차라리 눈을 뽑아 버리는 것이 낫다"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하셨다.

우리는 끊임없이 죄와 죄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난 보수복음주의 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에서 죄 문제를 아주 강조하고 "우리는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가르침의 근거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 구절인데 하지만 솔직히 일반적인 통념에 비추어 보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는 살인이나 강간 같은 죄이다. 그러니 누가 "너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하면 진짜 큰 죄를 짓고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나 아주 성숙한 복음주의 크리스찬이 아니라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게 마음에 안 와 닿는다고 하면 "그건 네가 아직 성숙한 크리스찬이 아니라서 그래"라든지 심지어는 "그게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은 아직 예수를 제대로 영접하지 않아서 그래" -- 다시말하면 "너는 아직 구원받지 않았어" -- 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살아 가고 있고, 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은 아무리 못해도 감옥에 갈 정도 잘못은 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짓고 살아 간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를 포함, 포르노 비디오로 성교육을 받고 가부장제도에 익숙해진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들을 동등한 인격체라기보다는 성적인 대상이나 눈요깃거리나 남성에 종속된 상대으로 대하는 경우가 잦다. 뭐 마음속으로만 눈요기 하는 것이고 우리 마누라는 집에서 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작은 편견들이 모여 사회적 편견을 만들고 그 편견이 수많은 여성들을 차별과 강간과 가정폭력으로 내몰았다. 또 다른 예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지만 정작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거나 일방적인 주장만 알고 있다 -- "난 잘 모르는 일이니까 책임 없어"라고 말하기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또 많은 경우 교만한 마음으로 (사실 자기가 교만했는지 아닌지 깨닫기도 힘들다) 다른사람을 판단하며 던진 한마디 한마디에 상대방이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며 전한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라"이다. 뺀질이처럼 "잘못했어요" 한마디하고 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들이 요새 그래요.. T_T). 유진 피터슨이라는 성경 번역가는 "회개하라"를 "change your life"로 번역한다. "네 삶을 변화시켜라". 회개하는 것이 곧 구원을 이루는 길이다. 우리 모두가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이건 아니건 예수님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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